오페라를 생각하면
뭔가 유럽의 한 도시의 고풍스럽고 멋진 상영관이 등장한다. 그리고 불룩하게 튀어나온 2층 객석의 한 귀족은 금색의 망원경을 들고 부채질을 하며 오페라를 감상한다. 또한, 무대의 남녀 배우는 듬직한 포스를 풍기며 금색 베토벤 스타일 가발을 쓰고 노래를 하고 있다.
이런 장면이 떠오른다. 나의 고정관념인지는 모르지만, 지금까지의 나는 오페라를 나 같은 일반인이 즐기기에는 조금은 거리가 먼 취미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이 책을 읽고 난 후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단지 변화한 것이라면, 예전엔 내용을 몰랐으나(실제로 보더라도) 이젠 내용을 대충을 안다 정도일 것이다. 그리고 내용을 알고 보니 생각보다 더 요상한 진행에 오페라를 만든 친구들도 결국 사람이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 정도이다. 그리고, 생각이 변하지 않은 또 다른 이유는 대한민국에서 오페라를 관람하기란 쉽지 않다. 공연을 많이 하지도 않을뿐더러 가끔 공연이 있으면 그 티켓 가격은 타 공연에 비해 월등히 비싸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잘 알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는 있지만, 내가 아는 바는 그렇다.
서론이 길었다. 이 책은 오페라의 내용과 노래등을 소개하며 어떤 포인트로 오페라를 즐기면 좋은지를 설명하는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은 대부분 오페라들에 대해 노래의 가사를 설명하고 오페라의 내용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래서 짧게 요약하면 오페라를 소개하는 책 정도가 될 것이고 길게 하자면 각 오페라의 내용을 다 소개해야 하는데 양극단 모두 마음에 들지 않으니, 내가 그래도 한 번이라도 제목을 들어봤던 투란도트에 대해 소개하는 것으로 책의 소개를 갈음하고자 한다. 그렇다. 내 맘이다.
투란도트를 소개하는 이유는 투란도트의 대표곡인 "네순도르마"가 내 최애 노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내 플레이 리스트에도 들어 있고, 내가 성악을 배우게 된다면 꼭 도전해 보고 싶은 곡이기도 하다. 그 곡이 속한 오페라가 바로 투란도트이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네순도루마의 뜻은 잠들지 말라이다. 참 없어 보이는 제목이다. 제목이 잠들지 말라라니... 중간고사 홍보 노래도 아니고 잠들지 말라라니, 이상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이 책에서 소개할 오페라를 투란도트로 정했다. 그래서 책을 읽어보고 나니 처음에 단순히 없어 보였던 가사다 더 기괴하게 다가왔다. 투란도트의 시작은 한 중국인 공주에서 시작한다. 이 공주는 무슨 자신감으로 문제를 3개 낼 테니 맞추면 결혼을 "해"주겠다고 한다. 그리고 문제를 틀리면 죽이겠다고 한다. 동화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전개다. 실제로 책에서도 이 오페라는 동화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도 갑자기? 결혼 "해"줄수도 있는데 틀리면 죽여버리겠어? 넘어가도록 하자. 일단 첫 장면에서 문제를 틀린 누군가가 죽음을 당하는 상황으로 시작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상황을 보던 남자 주인공은 공주가 예뻐서도 아니고, 권력에 탐이 나서도 아니고 자신의 운을 시험해 보고자 테스트에 응한다. 그리고 문제를 다 맞힌다. 뭐 여기까지는 예상이 가능한 전개다. 하지만, 이제시작이다. 공주는 듣보잡의 통과가 맘에 들지 않았는지 혹은 그냥 얼굴이 밉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름도 모르는 사람과 결혼 안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럼 문제 풀기 전에 물어보던가. 틀리면 죽일꺼였잖아? 이름을 알던 모르던, 근데 맞추니까 딴소리다. 전형적인 이벤트 사기 고객 우롱이다. 지가 편한 대로 해석하는 거다. 그리고 오기가 발동한 주인공은 왕한테 가서 중재를 요청한다. 다행히 왕은 지가 결혼하는 거 아니다 보니, 약속을 이행하라고 한다. 소비자 보호원이 고객 손을 들어준 것이다. 하지만, 이벤트 사의 관리 형태에 빡이 친 고객 즉 주인공은, 내일 해가 뜨기 전까지 본인의 이름을 맞추면 공주의 뜻대로 결혼을 무효로 해주겠다고 제안한다. 이 뭐 병... 그랬더니, 공주는 전 백성을 동원하여 잠자지 말고 이름을 알아낼 것을 명합니다. 댓글부대를 투입한 것이다. 그리고 더 적극적으로 주인공의 주변인 둘을 잡아서 고문한다. 막장 드라마 진행이다. 그리고 충성스런(?) 신하는 주인공의 아버지는 이름을 모르고 내가 알고 있다며 되도 않는 구라를 쳐 아버지를 풀려나게 한다. 구라를 믿는 놈이나 치는 놈이나. 친족인데 주인의 이름도 모르고 있던 세상 똥멍청이는 풀려나고, 이름을 알고 있던 친구는 갑자기(?) 자결을 하며 개인정보 유출을 원천 차단한다. 가지가지한다... 그 마지막 밤을 노래한 것이 네순 도르마다. 밤새서 깨어 있으며 내 이름을 맞추란 것이다. 아버지와 하인을 데려가서 고문으로 죽이던 주리를 틀던 상관 안 하고 이름을 맞춰봐 하고 약을 올리는 노래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노래 가사에 이름을 네가 알 수가 없으니, 나는 사랑을 쟁취하리라 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미운 정이 무섭다고 했던가? 꼬장 부리는 모습에 반한 건가? 오히려 약이 올라 결혼을 하되 결혼 이후에 작살을 내주겠다고 결심하는 것에 가깝다. 이쯤 되면 스토킹 집착이다. 그런데 사랑이란다. 이해가 안 된다. 심지어 이벤트사에서 가족 신상을 털고 압박하여 사상자까지 발생했으나, 개의치 않고 사랑한단다... 아 ㅅㅂ..... 그리고 더 충격적인 건. 백성을 동원하고, 가족을 데려다가 신상을 털고 고문까지 마다하지 않던, 공주가 동트기 전 주인공이 이름을 알려주며 강제로 키스를 하자 그의 이름은 사랑이란다 그러면서 결혼하겠단다. 아 짜증 난다. 실제 그의 이름은 칼라프였다.
여기까지가 투란도트의 줄거리 요약이었다. 세상 기괴하고 막장이며 똥멍청하다. 뭐 전체 줄거리의 개연성을 맞추기 위해 공주가 트라우마가 있다느니 베일을 썼던 공주가 베일을 벗으니 세상 미녀여서 주인공인 칼라프가 이전까진 오기로 버티다가 얼굴 보고 사랑에 빠졌는 니 정도로 무마하려는 것 같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막장이다. 소비자를 개똥으로 보는 기업과, 피해 소비자 간의 싸움이 자살까지 하는 사건으로 번젔으나, 기업이 변덕을 부려 원안을 수용함으로 싸움이 끝난 것이다.
푸치니의 오페라 중 미완으로 남겨졌지만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히는 작품이 이 투란도트이다. 줄거리를 살펴보면, 분명 이 순위는 줄거리가 아니라 노래의 완성도 및 다른 오페라적인 요소로 평가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어쩔 수 없이 극의 다이나믹한 진행을 위하 무리수를 둬야 할 수도 있다 보니 줄거리의 개연성은 주된 평가요소가 아닐 수도 있단 생각은 든다. 여하튼 이 책을 통해 엄청 고귀하고 멋질 것이라고 생각만 했던 오페라도 결국 관객을 홀리기 위해 막장을 차용하고 과장된 연출을 하는 그냥 대중 소비용 상품인 것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내용을 통해 오페라에 접근하는 것을 쉽게 하려고 한 목적이었다면 이 책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기회가 되어 오페라를 보러 갈 때 미리 줄거리를 알고 가면 조금은 더 흥미로울 수도 있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뤄질지는 확실치 않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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